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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한국철도의 시작과 함께한 제물포역

제물포역

 

1899918일 미국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일본에 의해 마무리된 노량진~제물포 간 경인선 철도가 개통하면서 한반도에도 기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열강들이 인천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철도가 필요했기 때문에 한반도 주요 도시를 관통하는 경부선이나 경의선보다 경인선이 우선순위로 정해져 건설되면서 그 영광스러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여기서 당시 경인선의 종점이었던 제물포는 근대 일본과 대외 조약이 있었던 제물포조약의 배경으로 한반도에서 한양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근대화를 이루고 있어 경인선의 종점(기점)으로 놓이게 되었고 기록상으로 제물포역은 경인선 인천지역의 최초의 종착역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렇게 100년 철도사의 첫 시작점이 바로 제물포역과 노량진역을 통해 출발선을 넘게 된 것이다.

 

다만 참고로 당시 지어진 제물포역은 현 제물포역과 완전히 다른 역이며 본래 구 제물포역은 현 위치가 아닌 ’제물포~도원‘사이에서 영업을 개시했었다. 또한 1957년 제물포역은 잠시 ‘숭의역’으로 역명을 변경했다가 1959년 다시 제물포역으로 그리고 1974년 수도권전철 개통에 맞춰 현 위치로 이전 개업했으니 현대까지 걸어오면서 많은 변화를 격었다. 그래도 비록 제물포역은 같은 경인선의 최초역이였던 노량진역과 달리 그 순수한 전통은 쭉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에 역사 이전과 같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대는 끊기지 않고 유지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여하튼 제물포역은 수도권전철이 개통하면서 전철 전용 역사로서 자리매김하게 되고 비록 경인선 복복선화와 관련 없이 급행열차는 정차하지 않지만 인천시립대나 인천재능대학 등 많은 학교들이 인근에 위치해 나름 캠퍼스타운의 중심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제물포는 인천에서 가장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인천의 기원이 되는 미추홀이 바로 현 제물포를 뜻한다고 하며 일찍이 백제왕조의 시조인 온조대왕의 형 비류가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 이곳에서 수도를 정했었다고 적혀있는 것이 제물포의 첫 기록이다.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비류가 세운 왕국은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백제에게 흡수당하게 되는데 이후 미추홀은 백제관할로 들어가면서 중국 동진. . 북위와 교류하는 요충지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백제가 망하고 신라, 고려를 지나 어느 듯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미추홀 인근에는 제물진이란 수군지기가 설치되는데 여기서 나온 제물진이 우리가 아는 제물포의 가장 집적적인 과거가 된다. 허나 제물진 보단 강화도가 수군 방어시설로 두기 적합하단 판단 아래 이후 제물진의 군사시설들이 강화도로 옮겨가고 대신 강화도, 월미도를 오가는 수로를 개척하게 되어 제물진은 제물포가 되어 기록상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침내 수도권의 해상교통 중심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제물포는 1879년 강화도 조약과 1882년 제물포조약이 체결되면서 개화장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인천을 포함해 한반도에서 과거를 가장 많이 벗어던지고 또한 가장 많은 변화를 받아들인 그 결과 경인선은 인천이나 동인천이 아닌 제물포역까지 놓이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제물포는 인천중구소속으로 편입되었고 또한 도하동과 숭의동으로 분리되어 사실제물포란 이름은 공식적인 행정구역상 없는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문을 연 인천대학교나 1974년 신역사로서 영업을 시작한 경인선 신역사도 제물포란 이름을 꼭 기입하는 등 제물포의 명맥은 없어지지 않고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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